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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novel

[AA/둠토니] The Victory of God 1화

* 애니 <Avengers Assemble> 시즌1 15화 'Planet Doom' 기반의 2차 창작입니다.

* 닥터 둠(빅터 폰 둠) × 앤서니 토니 스타크

* 자유연재




The Victory of God

W. MARTEN




Chapter 1.






세계는 믿을 수 없는 정보로 떠들썩해졌다. 온갖 미디어는 그 정보를 뿌리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판타스틱 포, 사형>

판타스틱 포가 누구인가? 뉴욕 백스터 빌딩에서 살며 모험을 즐기는 히어로 팀으로 유명하다. 미스터 판타스틱과 인비저블 우먼, 그리고 휴먼 토치, . 네 히어로가 있으며 그들의 가족 유대관계를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워낙 주위에서 친근하게 일어날 법한(갤럭투스 같은 범우주적 존재는 제외하자) 사건에 자주 엮이기 때문인지 뉴욕 시민들이 나름대로 잘 공감하는 히어로들이기도 하다. 많은 사고 덕에 법정에서 잘 만나는 히어로들이기도 하고.

그런 그들이 사형이라니? 사람들은 여기 미국에서 그들을 사형시키자고 주장하며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미국 정부를 포함한 그 어떤 누구도 그들을 사형시킬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1세기에 와서 사형이라니! 최악이자 최악인 범죄자가 아니고서야 판사는 웬만하면 사형을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판타스틱 포는 불법적인 일을 한 적이 없을뿐더러 빌런들을 물리치니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 사실에 대해 반박하겠지만 그들도 사형까지는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여길 것이다.

사람들의 궁금증은 곧 이어지는 뉴스에 의해 사라졌다. 닥터 둠의 미국 지배. 모두들 탄식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급속도로 성장하던 유럽 한 국가의 왕인 그가 결국 미국까지 지배하다니. 모두들 지금이 그가 세계 지배를 외쳐도 무시할 수 있던 때이길 바랐다. 그렇게라도 그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전세계가 그의 손 안에 있다. 미국이, 뉴욕이 넘어가지 않던 마지막 구역이었지만 방금 뉴스로 이 사실은 과거가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판타스틱 포를 구해줄 다른 히어로를. 그리고 자신들을 구해줄 그들을.

그렇지만 사람들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리드 리처드의 마지막 요구는 토니 스타크와의 면담이었다. 그들의 친분에 대해선 익히 들어 잘 알지만 모두들 의아해했다. 토니 스타크는 둠 경(Lord Doom)이 미국을 정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즉 그의 오른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의아해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둠이 기꺼이 그들을 만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닥터 리드가 토니를 설득해 그를 배신할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단 건가. 사람들은 내심 토니가 둠에게서 등을 돌리길 빌었다.

토니는 사람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 리드를 만나러 가기 전 저와 마주친 이들이 그를 언급하며 그들이 소망하는 것을 넌지시 언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토니 스타크이다. 그들이 원하는 데로 해줄 이유도 없을뿐더러, 둠을 배신할 이유도 없다.

그냥 친구 하나 잃는다고 생각해야지. 저와 영어가 통하는 사람이 하나 사라진다는 사실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나름 저 다음으로 미국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남자인데.

안타까워할 여유는 여기서 끝이다. 어두운 복도를 거닐면서 토니는 고민했다. 둠은 왜 자신이 그를 만나는 것을 허가했을까. 그 역시 배신에 대해 생각은 해봤을 텐데. 여태껏 저가 그를 모시며 그에게 강력하게 충성을 보인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이전에 누군가의 밑에서 일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에게 보여준 정도가 알아차리기 쉬운 범위인지 알지 못한다.

역시 모르겠단 말이야.”

토니는 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늘 깊은 고심에 빠져있는 왕의 입은 무겁다.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약간의 욕심을 품으며 복도 끝에서 대기하던 로봇의 안내를 받았다.

이곳입니다.”

로봇이 안내를 마치자마자 몸체를 옮겨 문 앞을 지켰다. 토니는 폐실 안의 빨간 레이저로 이루어진 감옥을 보았다. 실내에서 쾨쾨한 냄새가 나 손으로 살짝 코를 막았다. 목욕할 수 있게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았나보다 생각하며 오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리드.”

어둠 속에서 기척이 나더니 곧 꾀죄죄한 면상이 보였다. 씻지 않겠다는 의지로 반항을 표현하려했던 것일까. 토니가 혀를 쯧 차며 그를 탓했다.

좀 씻지 그래?”

농담할 기분 아니야.”

농담? ,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내 말에 그렇게 진정성이 없었나보군.”

토니.”

리드의 부름에 토니는 그를 장난으로 대하던 태도를 거두었다.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답을 요구했다. 둠의 명령을 받은 이후 며칠 동안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굳이 나를 택한 것이지?”

토니는 저가 리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할 때라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택할 남자란 사실을. 자신에 대한 그의 신뢰는 그 자신의 불신과도 같다는 점을. 그런데 왜? 혹여 그로 인해 둠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이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저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둠의 오른팔이니까.

토니 스타크이니까.”

뭐라고?”

내가 아는 토니 스타크는 절대 누군가를 모시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자네가 마인드컨트롤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야. 아니 솔직히 말하지. 의심이 아니야. 확신하고 있어.”

리드는 풍성한 수염을 만지며 느긋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토니는 그가 제 너머로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사람은 그가 바라는 토니 스타크일 테지. 확실히 그가 저런 확신을 하기에 이유는 충분하다. 자신은 지금까지 누군가를 모신 적 없이 개인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한 때는 지금의 둠처럼 미국의 (밤의)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존재다. 물론 관심이 없어서 되지 않았지만.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말해주다니.

토니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리드를 응시했다. 죽기 전이라 이리 절박한 걸까. 그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강 알게 되었다. 그래도 예의상 궁금해하며 미리 준비되어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계속해봐.”

……. 왜 닥터 둠을 모시는 건가? 그는 빌런이야. 너도 알잖아, 토니. 우리가 이렇게 되기 이전부터, 아니 더 가야겠군. 그는 처음부터 빌런이었어.”

그래서 빌런인 그와 난 싸워야한다?”

그래. 그게 내가 아는 토니 스타크이니까.”

그래? 그렇구나. 토니가 저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볼 때 리드의 가슴을 철렁거렸다. 정말 그는 그의 신념을 저버린 것인가. 과거에 그가 제게 이야기해주었던 정의는 어디로 갔는가. 속으로 깊이 갈등하며 슬퍼할 때 토니가 손을 퉁겼다.

저거 봐.”

리드는 토니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문을 지키기 위해 서있는 로봇이 있다. ‘둠봇이라 둠을 상징하는 녹색을 담은 것이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속 보고 싶지도 않아 고개를 돌려 토니를 보았다. 하지만 저와는 달리 토니는 애정 어린 눈으로 저 로봇을 본다.

어째서? 리드의 뇌는 순간으로 생겨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 빠르게 굴러갔다. 하지만 토니와 닥터 둠이 엮이게 된 정확한 계기를 몰라 끙끙 앓았다. 이 실마리만 풀리면 모든 게 깔끔해진다. 어째서 자네는 그를 위할까. 최근에 발생한 큰 사건을 차례로 떠올리려할 때 토니가 리드를 불렀다.

리드. 혹시 신을 믿어?”

?”

갑작스러운 질문은 리드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손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 보았던 실이 알고 보니 엉망진창으로 엉킨 상태였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게 된 관계에 골이 아팠다.

토니는 끙끙 앓으며 답안지를 채워보려는 리드의 행동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은 친구.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온 저가 신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토니는 살짝 눈을 굴려 로봇을 보았다. 리드는 모르겠지만 최근 만들어진 둠의 로봇들은 다 저가 디자인한 것들이며 저가 손수 만든 것들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제 신을 위하여. 토니는 미소를 감추고 차가운 얼굴로 리드를 응시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친구였던 자와 대치할 의향도 있다.

난 최근에 믿게 되었어. 자넨 모르겠지만 난 죽을 위기를 겪었지.”

토니는 잠시 몇 달 전 일을 회상했다. 그 때를 떠올리며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그 날을 난 아직도 기억해. 테러에게 공격을 당했는데, 세상에 무기에 내 회사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떡 하니 있는 것 있지!”

그날부터였다. 그날부터 저가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안전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것이란 사실도 깨달았다. 가까운 사람의 배신과 자신과 계약했던 단체의 배신도 한몫했다. 지금은 훌훌 털어버렸지만 사건 당시는 아니었다. 인간 불신까지 갈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때 절망하던 제 곁에 신이 있어주었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저가 있다.

토니는 어두운 불빛 밑에서 손의 굳은살을 더듬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제 능력을 기꺼이 받칠 만큼 둠은 제게 큰 존재다. 정의. 토니 스타크의 정의는 둠의 정의로 바뀌었다. 리드가 말하는 정의는 성인이 되면서 버린 지 오래다. 만약 그가 어린 제게 그의 주장을 외치며 설득했다면 넘어갔겠지만, 자신은 더 이상 사회를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배신과 배신으로 가득한 곳을 알아버린 다 큰 성인이다.

게다가 둠이 원하는 사회는 저가 어릴 적부터 꿈꾸던 사회다. 미래다. 세상 모든 인류의 평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로봇. 얼마나 희망 찬 세계인가. 얼마나 안전한 사회인가. 범죄자는 빠르게 처단하거나 가두고 시민들을 보호한다. 진심으로 바라던 사회다. 토니 자신은 이 꿈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가 하는 길을 기꺼이 함께 하고 싶다.

리드 자네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만약 알고 있다면 내 선택을 이해하겠지. 왜냐하면 둠 경이 이루고자 하는 일이 내가 꿈꾸던 미래니까 말이야.”

싱긋 웃어주는 토니를 보며 리드는 할 말을 잃었다. 과거에 그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닥터 둠과 겹칠 줄은 몰랐다. 아니, 알긴 했다. 그렇지만 둘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최악의 조합이야. 과학과 마법에 능통한 닥터 둠과 그의 부하가 된 퓨처리스트 토니 스타크. 심지어 토니 스타크는 과학에도 능통하지만 테크놀로지에 관해선 현재 세계 1순위다. 둠이 어떻게 해서 토니를 설득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은 확실했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는 사상 최악일 것이란 점.

리드는 예견되는 앞으로의 일에 비통하며 입을 닫았다. 토니의 눈과 귀는 닥터 둠이 막았다. 토니는 모르겠지만 저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런 그에게 둠을 물리쳐달라는 말은 하지 못하지. 순간 답을 얻었다. 왜 그가 그랬는지 명료해졌다.

왜 닥터 둠은 토니 스타크가 나, 리드 리처드와 만나는 것을 허락했는가. 이미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토니 스타크가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이며 절대 그를 배신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결국 저와 토니는 그에게 단순한 체스 말이었다.

희망고문이었군. 리드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제 친구를 보았다. 그를 설득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수와 다른 멤버들에게 확신조로 알려주었다. 이렇게 실패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둠은 분명 자신이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제게 남은 방법은 그들에게 할 이야기를 토니에게 말해주는 것 뿐. 토니가 전달해줄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 하지만 제 수중에 있는 관계는 현재 그 밖에 없다.

토니.”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하던 토니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면 리드가 어떤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을지 알고 있기에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고 전해줘.”

부탁이야. 아예 풀려날 것이란 확률은 버렸는지 목소리가 작아진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소리에 토니는 리드가 포기했다고 확신했다. 문 밖으로 나온 후, 토니는 친구에 대한 마지막의 호의를 위해 다른 판타스틱 포의 감옥으로 향했다. 보통은 둠의 의사를 묻고 그의 명령을 듣는 형식을 거쳐야하는 게 맞다. 하지만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단독으로 결정했다. 행동한 후에 통보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어둡고 추운 긴 복도를 걸었다.

 

 

판타스틱 포는 둠에게 붙잡힌 지 일주일이 지난 후 뉴욕에서 공개처형을 당했다. 둠은 그들의 죽음을 통해 시민들에게 복종을 요구했고 시민들은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리고 뉴욕의 거리는 토니와 둠의 합작인 로봇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게 미국을 마지막으로 둠은 세상을 삼켰다. 전 세계가 그의 손으로 떨어진 것이다. 둠은 그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갔다. 복종만 있으면 평등한 사회.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다. 그저 왕과 국민들만 있을 뿐.

 

 

▷▷▷

 

 

몇 시간 후 큰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다행히 웬만한 큰일을 로봇들이 맡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그들이 할 일은 적다. 그래도 행사를 완벽하고 성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쉬지 않고 움직인다.

토니는 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알맞은 일을 분배해주어 행사 준비를 착착 진행시켰다. 누구보다 힘들고 바빴지만 왕을 위해 기꺼이 도맡았다. 중간 중간에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받을 때는 그의 인공지능 자비스를 사용해 빠르게 해결했다.

스타크 씨 해머 인더스트리로부터 화관이 왔는데, 이건 어디에다가 둘까요?”

해머라고?”

.”

내가 잘못 알고 있나? 본 적이 없는데. 토니는 의아해하며 들고 있는 태블릿으로 명단을 확인했다. 역시 기억하고 있는 대로 명단에는 해머 인더스트리가 없다. 어떻게든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해머를 비웃으며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 문 밖에다가 둘까요?”

아니.”

부하는 잠시 토니의 말을 기다렸다. 문가를 가리켰으면서 아니라고 하다니. 어디로 갈지 몰라 속으로 우왕좌왕할 때 답이 들려왔다.

명단에 없는 이름이야. 아예 건물 밖이나 복도 끝, 그러니까 계단 입구에 둬.”

명단에 올라오지 않은 이름. 부하는 토니의 명령을 납득하곤 그가 제시한 곳으로 향했다. 명단에 있다면 불쌍한 처우지만 등록된 회사가 아니니까. 부하는 건물 밖에다가 화관을 두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명단에 없는 이름은 해머뿐만이 아니다. 꽤나 많다. 이런 사람들은 둠에게 붙을지 말지 오늘 전날까지 고민했을 테지만 결국 권력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위해 예정에 없던 선물을 보냈다. 그래서 토니는 이런 박쥐들을 제거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명단에 없는 사람은 언제라도 기꺼이 둠을 배신할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가차 없이 그들의 선물을 버려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해머 인더스트리의 기술은 스타크 인더스트리보다는 훨씬 밑이지만 무기는 많이 보유하는 편이 좋아 특별히 선처해주었다. 토니는 태블릿으로 첨부된 해머의 무기 목록들을 살피며 좋은 걸 건질 수 있는지 살폈다.

뭐야? 왜 이렇게 구린 것 밖에 없어?”

무엇이 말인가?”

토니는 목소리의 주인을 보기 위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왕이자 신인 둠이 서있다. 그는 평소와 같이 큰 망토는 걸친 상태지만 안에는 갑옷 대신 정장을 입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신랑 예복이다.

별 것 아니에요. 그냥 좋은 무기가 있나 알아봤는데 건질 게 하나도 없어서요.”

토니가 헛짓을 했다며 작게 툴툴거리다가 둠의 넥타이를 보곤 손을 뻗었다. 약간 삐뚤어진 넥타이를 만져 바르게 잡아주곤 가볍게 톡톡 쳤다. 잠시 둠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그의 복장을 다시 살펴보았다. 완벽하군. 토니는 만족해하며 다시 둠의 곁으로 다가왔다.

망토 걸치신 모습도 좋지만 아무래도 벗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아니면 식에 어울리는 다른 색을 준비할까요? 검은색이나 흰색으로요.”

그대가 소개해준 코디네이터도 그런 말을 했다만……. 그대의 의견대로 벗도록 하지.”

괜찮으시다면 행사가 진행될 동안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토니가 망토를 받기 위해 팔을 벌렸지만 둠은 잠시 고민했다. 토니가 들고 있기에는 자신의 망토가 크고 무거우며 무엇보다 그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둠은 손을 저어 괜찮다고 말한 후 자신들의 옆을 지나가던 로봇을 불렀다.

둠이 망토를 벗으려고 할 때 토니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엄청 아쉬웠다. 어떻게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이미 그만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제 욕심 탓인지 더 해주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둠이 살짝 고개를 숙여 토니와 시선을 마주했다.

……. 빅터?”

둠은 그대에게 이 망토를 거둘 것을 명한다.”

기꺼이.”

토니가 갈고리를 풀어 둠에게서 망토를 거두었다. 워낙 크기가 큰 망토라 그런지 잠시 공중에서 화려하게 펄럭였다. 그렇지만 토니의 시선을 앗은 건 망토가 아니라 둠이었다. 눈 감으면 주름이 좀 사라지구나. 토니는 그가 제게 망토만이 아닌 그 자신까지 맡긴 것 같아 내심 뿌듯해졌다. 적어도 그에게 저는 믿을 수 있는 존재이므로.

토니는 망토가 바닥에 닿기 직전 빠른 속도로 망토를 깔끔하게 접었다. 옆에서 대기하는 로봇에게 건네며 명령했다. 대기실에 가져다 놓아. 로봇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방향을 틀어 신랑 대기실로 향했다.

난 이만 가도록 하지.”

둠은 바쁜 토니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토니가 둠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있고 싶어 그를 붙잡았다.

곁을 모시겠습니다. 아니면 따로 주실 명령은 없나요?”

지금 맡은 일로도 충분히 바쁘지 않나?”

전혀요. 당신을 모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걱정되신다면 바로 일을 마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괜찮다. 여기 있도록. 다만 난……. 그대가……

지금까지 둠을 모시는 동안 둠이 뜸을 들이며 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토니는 놀랐다. 겉으로는 그의 말을 차분히 기다리는 중이지만 속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리가 났다. 자비스의 측정에 따르면 현재 심장 속도가 평균의 1.4배이다. 곧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빛의 속도에 도달하지 않을까. 토니는 고민이 아닌 고민을 하며 둠의 명령을 기다렸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대가 둠의 말동무가 되어줬으면 좋겠군. 난 그대의 재치를 좋아한다.”

, 지저스. 아니, . 토니는 튀어나오려는 감탄사들을 막기 위해 입술을 약간 깨물었다. 만약 이곳에 저 혼자만 있었다면 방방 뛰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해두어 할 일을 거의 끝냈지만 이런 큰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둠은 평소보다 들떠있는 토니를 조용히 감상했다. 감정 제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차분한 얼굴로 돌아오는 데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재미있군. 자신이 보았던 모습들과 그 이외의 모습들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작은 것도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에게도 이러했지. 어벤져스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자신이 그들을 매일 관찰했다는 점이다. 이제껏 자비스조차도 잡지 못하는 소형 카메라로 그들의 일상을 빠짐없이 보았다. 그래서 토니와 스티브가 가진 감정을 못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티가 나는데 모르면 문제다. 연인 관계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잘 안다.

그래서 자신에게 복종하는 토니는 진귀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그가 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복종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복종으로 인해 미리 짜놓았던 계획의 시기가 앞당겨졌고 훌륭하게 성공했다. 앤서니 토니 스타크 덕에.

둠은 자신에게 웃어주는 토니의 뒤를 따르며 조용히 그의 안내를 받았다. 자신이 미소를 지을 때 저보다 더 기뻐하는 그를 계속해서 응시했다. 진심으로 웃는 앤서니 스타크라. 둠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정말로 높은 값을 지불해도 볼 수 없는 모습을 자신만이 보게 되어 무척 만족스러웠다.

 


[신랑은 신부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한다.]

실내의 분위기는 엄숙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분위기를 흐리지 않게 만들기 위해 조심스럽게 숨 쉰다. 둠 경의 결혼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 모든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클린트는 화면 너머로 풍겨오는 둠의 권위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 행사에 참여하지 않길 잘했다며 자신을 칭찬할 때 스피커로부터 신부의 맹세가 들렸다.

[맹세합니다.]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잠시 닦고 있던 활을 내려두고 리모컨을 들어 음량을 높였다. 제 모든 주의를 감각으로 집중시키며 다시 신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신랑, 신부는 맹세의 키스를 하십시오.]

카메라가 철가면의 신랑과 하얀 베일의 신부를 클로즈업했다. 언뜻 비추어지는 라인이 꼭 저가 아는 사람 같아 클린트는 매우 불안했다. 제발 아니길. 제발 그녀가 아니길. 하지만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베일이 넘겨지면서 보인 얼굴과 탐스러운 붉은 머리는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둠이 부드럽게 신부의 베일을 잡아 그녀의 머리 뒤로 넘겼다. 붉은 빛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들은 진심으로 놀랐다. 연예인도 정치인도 아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저 여인과 그는 어떻게 만난 것일까. 모두가 사연을 궁금해 했지만,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면 안 되기에 그들의 맹세를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주례자로 나온 토니는 제 앞에서 키스로 맹세하는 두 남녀를 조용히 응시했다. 다른 결혼식의 주인공들과 달리 둠은 나타샤에게 입술만 맞대며 짧게 끝냈다. 하지만 그 키스가 너무나도 둠답기에 토니는 쓰게 웃었다. 키스보다 둠의 손이 제 눈에 들어왔다. 갑옷으로 감추어져 있던 손이 제 생각보다 의외로 말끔하기 때문이다. 토니는 둠의 손이 신부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 다정하게 그녀의 입술을 건드리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여기가 자신의 자리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의 곁에 있되 그의 첫 번째 사람이 될 수 없다. 처음에 토니는 둠에게서 그의 주례를 맡으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베스트 맨을 하라는 명령이어도 정말 기뻐했을 것이다.) 그 명령이 저가 그 누구보다 그가 신뢰하는 사람이란 뜻 같았기에.

그래서 더 슬픈 걸까나. 토니는 혈압이 낮아진다는 자비스의 알림을 듣곤 제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로 아까와는 다르게 심장이 천천히 뛴다. 매우 느리게. 점점 느리게. 위험 수준에 도달하려고 했는지 자비스가 경고했다. 다행히 심장은 곧 제 속도로 돌아갔다.

신랑과 신부의 키스가 끝나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저들 중 진심인 사람은 몇 명일까. 차갑게 그들을 흘겨본 토니는 마지막 대사를 읊었다.

신랑 빅터 폰 둠과 신부 나타샤 로마노프의 행복한 삶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제 삶의 행복도. 둘 몰래 그들에게 자신의 소망을 얹는다. 토니는 나타샤가 부케를 던지는 것을 보며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뿐만이 아니라 제 마음도. 자신의 사랑은 더 이상 (법적으로) 보답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둠의 곁을 떠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계속 그를 보좌할 예정이다. 단지 흔들리는 저가 그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니 충성스러운 부하를 철저히 연기하자고 다짐할 뿐.

토니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무대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아부를 받고 있는 신혼부부를 보다가 발을 돌렸다. 저 치들을 다 쳐내고 싶긴 하지만 로봇들이 대신 해줄 것이다. 제 마음의 안정을 위한 휴식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지쳐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식장을 나갔다.

복도를 걸으면서 토니는 자신에게 괜찮다고 반복해서 속삭이며 어깨를 쭉 폈다. 저를 위해서 이 이상 처량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스타크.”

그렇게 겨우 다짐한 제게 왜 당신이 나타난 건지. 토니가 숨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단정하게 빗었던 머리가 약간 흐트러졌음에도 둠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지금 이 순간, 다시 한 번 그에게 반한다. 거두지 못할망정 왜 늘리니, 토니. 토니는 속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욕하면서도 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결혼 축하드려요, 빅터.”

그대의 노고가 많았군.”

당연한 일인 걸요.”

사실은 더 해드리고 싶었어요. 본심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감추며 밝게 웃었다. 토니는 저가 둠에게 짐이 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비행기를 탈 때까지 그의 옆을 보좌할 예정이지만 정신적으로 한계가 왔다. 지금 당장은 혼자 있고 싶기 때문에 어서 둠이 나타샤에게 돌아가길 바랐다.

신혼여행 잘 다녀오세요. 최상의 장소들로 잡아두었으니 만족하실 겁니다. 그럼 전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토니가 고개 숙인 후 등을 돌릴 때까지 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니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할 테지만 자신은 이미 그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그를 계속 지켜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며칠 간 이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누구보다 고생한 사람이다. 어떻게 상을 내릴까 고민하는데 평소보다 떨구어진 어깨가 눈에 띠었다. 정말로 미묘한 차이지만 분명히 평소보다 쳐져 있다.

스타크.”

둠이 토니를 불렀다. 고개를 획 돌린 토니의 낯에는 기대감이 차있다. 어쩌면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둠은 잠시 고민했다. 결혼식이 끝난 지 몇 십 분 되지 않았지만, 결혼식을 전후로 토니의 감정 표현이 줄었다. 제 판단이 옳다면 토니는 앞으로 자신에게도 그를 숨길 것이다. 그가 스티브 로저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대 마음대로는 불가하지. 둠은 인정했다. 자신은 토니 스타크가 마음에 든다. 그처럼 사랑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자신을 따르는 그에 대한 호기심일 것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많은 힘을 보태는 그를 잃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둠은 그 몰래 그의 목에 목줄을 걸었다. 그가 절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주문.

고맙다, 앤서니.”

앤서니. Anth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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